
지하 1층.
출입구를 중심으로 반원을 그리는 얕은 나무 무대.
천장 속으로 숨어 버린 조명들.
외국 포스터만 매달려 있는 바(bar)
한 쪽 귀에 귀걸이를 매달고 있는 체격좋은 남자가 CD를 틀고, 술을 준비하는 바.
이렇게 두 개의 바가 있다.
일곱 개의 테이블 위에는 밀러와 코로나가 뒹굴고 있다.
멜빵을 한 남자가 빙고(bingo)를 위해 종이를 나누어 주고, 돈 천원씩 거두어 간다.
생소하지만 낯설지도 않은 느낌으로 다가서는 무대.
빙고가 시작하고, 저속적일지도 모르는 유머가 시작된다.
빙고의 결과 다섯 명의 남 녀가 승리를 했다.
승자에게는 참가비로 걷은 사만 이천 원과 밀러 한통을 가지게 된다.
“어떻게 할까요? 사만 이천 원을 다섯 명에게 뿐빠이 할까요? 아니면 게임을 해서 몰아주까요?”
몰아주자는 목소리가 들리는 일곱 개의 테이블.
춤추기로 승자를 가린다.
순서대로, 때로는 야하게, 때로는 액티브(active)하게,
80년대의 말춤부터 멜빵남자도, 서빙의 두 남자도, 바(bar)의 두 남자도.
물론 테이블에서 연호가 터져나온 뒤 거구의 황지훈도 얕은 무대로 가서 춤을 춘다.
그리고 모두 모두 춤을 춘다.
테이블에서는 밀러와 코로나가 뒹굴고 있다.
– 대학로 어느 바에서
그 곳엔 없는게 많다. 시간의 존재도 없다.
단순히 시간의 흐름, 즉 ‘지금 몇시인가?’라는 것이 아니다.
과거와 미래는 없고 단지 현재만 있을 뿐이다.
일곱 개 테이블의 사람들은 모두가 나이가 다른다.
30대 중반의 사람부터 20대 초반의 사람들이 끼를 간직하고 살고 있는 것 같다.
또 그 곳엔 꺼리낌이 없다.
지극히 개인주의적이지 않다.
다른 테이블에서 우스운 얘기가 나오면 모두 다 웃고, 즐거워 한다.
춤추기의 승자를 가리는 박수가 냉정하게 나오지만 그 속에는 웃음 뒤의 정이란 것이 있었다.
모두 단골인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아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동네 술집, 포장마차에서 있을 수 있을 것이지만, 분명히 여기도 있었다.
그 곳에 있는 것도 있다.
하지만 재미는 있다.
모든 것이 재미로만 연결이 된다.
한마디 한마디의 농담들. 춤추기의 특기들이 전시되고 있는 재미.
분명 재미는 있다.
그리고 같이 놀줄 아는 사람이 있다.
술도, 담배도, 여자도, 남자도, 자동차도, 웃음도, 튀는 의상,
그리고 이상하게 사람의 정(情), 냄새도 있다.
하지만 그 곳엔 없는게 많다.
거기엔 소주도, 김치도, 정치도, 경제도, 문화이론도,
가치관도, 사랑도, 슬픔도, 힘든 것도, 눈물도, 치열함도, 혁명도 없다.
그런데도 거기에는 정(情)을 느꼈다.
거북하기만 했고, 즐겁지도 않았을 장소에서
정(情)과 냄새를 느꼈다는 사실에 놀라 수 밖에 없었다.
왜?
그곳엔 개인주의적이지도 않고, 자만적이지도 않고,
돈으로 승부를 걸지도 않고, 무었보다 체, 척하지도 않았다.
테이블을 오가며 스스로의 제약을 부수는 분위기가 있었다.
승부를 걸 돈은 안되지만 분명 과한 지불를 요구하고,
단순한 재미만을 수용하고 돌아서기에 마지막 출입으로 발길을 끊는다.
© 2002 – 2025, ‘adim21.co.kr’, ‘copywriter.or.kr’. All rights reserved.
이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
0개의 댓글